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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의 이야기2008. 5. 29.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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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던 어제 새벽 세시. 내 방에도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음. 빗소리 좋지. 그런데 방 한쪽 벽면과 천장에서 빗방울이 방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아-놔- 70년대 엄마 찾아 산만리 신파극도 아니고 아임 유어 파더식의 개연성없는 반전 영화도 아니고. 어떻게 21세기 건물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거냐며. 그대로 주저 앉아 소리 내며 떨어지는 비를 보며 얼마간 있었더랬습니다. 아- 삶이 조나단 치열해. 이젠 비마저 나를 가만두지 않는구나. 정신을 차리고 바구니 같은 걸로 빗방울 받아내도록 수습하고 누워자려는데 어찌나 빗방울 소리가 크던지. 아- 빗방울 소리도 치열하구나. 아침에 일어나서 주인 아주머니 어떻게 이런일이 21세기에 건물에 가능한거냐고 따지려는데 주인 아저씨가 나타나서는 너무 죄송하고 미안하고 몸둘바를 모르겠다며 삼일뒤에 고쳐주겠다고 말하고 돌아 가는데. 뭐라 쏘아 붙이지도 못하고 나만 손해 본 느낌이 드네요. 지금도 비는 사분의 일박자로 바구니 속으로 경쾌하게 떨어져 주시고 있스무니다. 오늘도 잘자긴 틀렸구나. 두 달만 버티고 나가면 되는 것을. 빨리 이 동네를 떠나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 바구니를 찾다가. 몇 달전에 누군가 주고간 새우깡을 발견했어요. 원래 과자를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요즘 방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도 아니거니와. 더구나 새우깡에서 쥐머리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나왔다는 말에 고이 보관하고 있었는데. 찾은 이상 그대로 두기도 뭐하고. 먹는걸 버리기도 뭐해서. 연구실에 가져와서 중국인 유학생인 용칭에게 주었더니 이걸 왜 나에게 주는 거냐고 반문하길래 내심 깜짝 놀랬습니다. 직감은 지식을 능가하는구나 싶었지만. 넌 나의 친구가 아니겠냐며 이 과자는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과자라니까. 그는 환하게 웃으며  땡큐 베리 머취. 다른 중국인 친구인 왕슈와 나누어 먹으면서 다시 한번 땡큐하는데 나는 유 어 웰컴. 사실은 초큼 미안해. 근데 괜찮을거야. 그건 노래방용 새우깡이 아니잖아.

- 아침에는 대치동에서 열리는 워크샵에 갈 예정입니다. 방에 습도도 필요 이상으로 높은 마당에. 밤을 새버리고 가버릴까 고민이 되는군요. 학회 직원 안지영씨와 커피라도 한잔할까 싶었는데 안나온다고 하셔서 재미는 없을 것 같네요. 처음 워크샵에 갈때 똘망똘망하던 나의 눈빛은 언제부터 이렇게 변한 건지. 대충 자리 채우면서 프리젠테이션 듣다가 역시 이런 워크샵 강연은 들을게 없다라며. 투덜거리고 나와 현미 녹차 하나 타먹고 오겠지요. 근데 정말 들을게 없긴해. 누굴 위한 워크샵인지 가끔은 헷갈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 워크샵도 워크샵이지만. 강남까지 이왕 가는김에 병원에도 가볼 생각입니다. 건강이 제일. 어릴땐 몰랐는데 정말 건강이 제일. 돈도 중요하지만 사랑도 중요하지만.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매일 아침 눈뜨고 자기전까지 느끼는 요즘입니다. 렌즈를 안끼니 세상이 아름답게도 보이고. 더러운 나의 피부뿐 아니라. 트러블난 여자분들 피부도 곱게 보이니까 여러모로 긍정적인 사고에도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가끔은 간절히 육백만불의 사나이처럼 되고 싶은 공상에서 허우적 대기도 합니다. 금요일쯤에는 간수치도 다시 재봐야할 것이고. 맥주는 마셔도 되는거냐고 물으면 의사분이 다시 한번 누워서 티비나 보라고 하진 않을런지. 친구는 이번 기회에 술은 끊고 너도 담배를 피우라고 추천해 주는데. 이 자식아. 그러고도 니가 친구냐.

- 다음주에 졸업 논문 디펜스를 해야한다는 소식을 저녁 식사중에 들었습니다. 음. 졸업이 가까워 오고 있구나. 오는 걸음 소리가 너무 또렷해서 경계를 안할 수가 없네요. 남은 시간이 중요하다는건 알겠는데 무얼 하며 보내야할지는 사실 모르겠습니다. 주변에서는 해외 여행을 갔다오라고 하는데. 갔다오면 흡족해하며 졸업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인지. 스물 여덞이 되도록 나는 언제나 학생이었는데. 양복입고 출근해서 사원증달고 과정님 대리님 안녕하십니까. 하려니. 가늠이 안되는게 사실. 잘할 수 있을까. 뭐든 처음이 어렵지요. 닥치면 다 하겠지만. 뭐든 처음이니까 지금 나는 염려스러워요.

- 취업 뽀개기와 동시에. 무언가 쫓던 목표가 사라진 요즘. 열렬히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고 싶었던 음반 모으기 입니다. 예전에는 비자카드가 이리 좋은걸줄 진정 몰랐어.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한정 셋도 긁어주시고. 십년전에 나온 스매싱 펌킨스 한정 셋 중고과 희귀 싱글도 긁어주시고. 미선이 초판도 구해버리고. 비어 버린 마음 한구석을. 이처럼 물건으로 채우는 것이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술도 마실 수 없는 요즘에 채울 수 있는건 이런 것 밖에 없는거라며 긁고 긁고 긁고. 박사 형이 말하기를 앞으로 계속 그런식으로 살다보면 너의 삶은 카드를 긁기 위한 인생이 되는 거라며. 빨리 여자 친구나 만들라는데. 누구는 만들기 싫어서 안만드나. 그것도 그렇지만 형도 나 못지않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라구.

- 스카이프를 이용해서 중국에 있는 있다씨께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오늘은 은근슬쩍 문자도 보내봤지요. 세상 참 좋지. 인터넷으로 국제 전화를 하다니. 중국은 일분에 이십이원밖에 안하더라고요. 중국에 지진이 나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공연하는거에는 영향이 없다고. 근데 다른 문제가 생긴 것 같아서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한가지 고백하자면 한동안 너무 정신없고 고민되는 일들이 많아서 노래도 안듣고 지냈다가. 요번에 다시 있다씨 노래 가사를 읇조리면서 누워서 들으니까 세상에 두려울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래서 나는 영원히 있다씨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을거예요. 왜 사람들은 나처럼 느끼지 않는걸까. 왜 브로컬리 너마저나 오지은같은 뮤지션들이 주목을 받는건지 모르겠어요. 박준흠씨는 이상은씨 이번 앨범이 육집 이후로 최고라고 하질 않나. 정말 그 분 취향은 아스트랄한 구석이 있어요. 오래전부터.

- 블로그에 갑자기 애정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뭐 이렇게 난잡한 블로그가 있나 싶네요. 이 블로그를 처음 만들었을 때에는. 그럴듯한 음악 블로그를 해보려 했는데. 정작 음반 리뷰도 안쓰고. 꼴같지않게 은근스런 비유나 써가며 나도 가끔은 슬프고 아파요라고 하는 것 같아서 웃기면서 웃기지도 않게 되고 있지요. 나아질거예요. 조만간은. 언젠가는.

- 포스팅 하나씩 올릴때마다. 은근슬쩍 음악 파일을 같이 올리는게 습관처럼 되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 곡은 따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서. 모임 별의 네번째인가 다섯번째인가에 발표한 싱글 수록곡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는 사운드 텍스처 일수도 있지만. 나는 이런게 좋더라. 여하튼 홍대 앞에 있는 LOVO라는 까페에서 반나절 동안에만 팔았던 싱글이라 쉽게 듣진 못할거예요. 그렇다고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사람마다 틀리니까. 당시에 두 장을 사서 한 장은 내가 갖고. 다른 한 장는 그 날 처음 만난 여자분께 선물로 드렸지요. 마치 서로를 잃어 버렸을 때 만나 확인할 수 있도록 동전 한개를 쪼개서 나눠가지는 마음으로.



Posted by soo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