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거림

나만 몰랐던, 도량형 이야기

from마음 2024. 8. 2. 21:52

일전에 석탄주를 만들던 경험 중에, 도량에 관한 의문이 생겨 아래의 포스팅을 올린 적이 있다.

한 마디로, 전통주 연구소 수업에서 배운 도량으로, 박록담 소장님의 책에 적힌 석탄주 비율을 보니 궁금한 점이 생겼었다.

비율 편차가 너무 커서, 당시에 단톡방으로 문의를 했었는데 이에 관해 정확한 답변을 못 받기는 했었다.

https://soony.tistory.com/206

 

[완료] 석탄주 #7 @2023.10.28.

이전에 엑셀로 기록을 하며 만들었던 술 중에서, 블로그에 옮겨 기록하고 싶은 것을 골라 적음이번 것은 늘상 다들 알법한 석탄주이지만, 비율에 대해 생각해볼 거리가 있었던 경우라서 다시 기

soony.tistory.com

 

이에 대해 "맨"님이 도량에 대한 의견을 주셨고, 이 후에 조금 조사를 해보니 굉장히 큰 모순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미 남들은 다 아는 것이었을지는 몰라도, 무게로 적혀있던 주방문을 의심도 없이 쓰던 내게는 좀 신선한 충격이었다.

 

관련해서 정리가 잘 된 공식적인 자료는 아래를 참고했다. 보다 정확한 출처는 < 이종봉, 2004. 조선후기 도량형제 연구. 역사와 경계, 부산경남사학회. Vol.53, No.0. p64. > 라고 하는데, 인터넷에서 원문 다운로드는 안되는 듯 하다. 후에 "맛록담"님께 < 한국 도량 형사 (이종봉 교수) > 책을 추천 받았다. 아주 자세하게 기술된 이 분야의 필독서이었다.

https://koreanfood.rda.go.kr/kfi/alcoholData/data1?menuId=PS03556

 

농식품 올바로 - 전통주(우리술) 전통주 개요 - 도량형 이해

 

koreanfood.rda.go.kr

 

세종실록(1446년)이나 경국대전(1485년)에 적힌 도량을 기준으로, 아래가 조선시대 표준 도량이라는 걸 알았다.

 

참고로 조선시대 표준양기의 단위는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작(勺:사)·합(合:홉)·승(升:되)·두(斗:말)·석(石:섬)’으로 기록되어 있고, ‘10작(勺)=1합(合), 10합=1승(升), 10승=1두(斗)’는 10진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반해 두와 석의 관계는 15두=1석(평석)과 20두=1석(전석)이었다. 『경국대전』에 ‘작(사)·합(홉)·승(되)·두(말)·석(섬)’ 등의 5종류가 기록되어 있지만, 널리 사용되었던 것은 『세종실록』에 기록된 ‘합·승·두·석’이라고 한다. 

 

또한 아래 링크에 가면 이런 글도 있다. "표준 양기의 1 부피는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 약 0.2ℓ에서 조선초기 약 0.6ℓ으로 변화되었다.이는 전근대사회의 사회경제적 발전과 함께 표준 양기의 부피도 변화가 반영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0267

 

표준 양기(標準 量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어찌되었던 간에, 즉, 본래 조선시대에서 사용하던 1되(升)의 부피는 약 570mL였다. 물론 당시의 각 지방 도시나 집안 마다, 같은 단위라도 임의대로 다른 도량으로 사용했다고는 하는데, 현실적으로 이건 논외로 봐야할 것이다.

 

1되(升)를 원료별로 무게로 전환하면 아래와 같다고 한다.

 

아래의 도량은 물 계량 기준으로 보인다. 1되(升)는 570ml이다.

 

일제에 의한 1909년 도량형법 개정 이후, 아래와 같이 쉽게 말해 1되의 부피가 1.8l로 변경되였다.

이 후에 이 단위는 1963년 5월 31일에 실시된 계량법 제11조에 의해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말이 그렇지 어릴때 시골에 살던 나도, 시장에 가면 됫박으로 계량해서 담아 팔던 상인 분들에 대한 기억이 있다.

 

따라서 일제 치하 시기(1910~1945)에 출간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을 제외한, 고문헌 주방문은 조선시대 도량을 사용하는 것이 맞다. 예를 들어서 주찬(1800년대 초반), 임원십육지(1827년), 양주방(1837년), 시의전서(1800년대후반), 음식방문(1880년) 같은 사례가 모두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전통주연구소에서 교육하는 도량은 위 두 가지의 도량과도 조금 차이가 있어 보인다. 

물 1되(升)가 1.8l 인 것은 1909년 도량형법 기준으로 보이는데, 곡물이나 누룩 도량은 근사치도 아니고 큰 차이를 보인다.

되(升) 가 아닌 물 도량도 조선시대의 도량과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이와 관련해서 정확한 출처는 알 수 없지만, 인터넷에 아래의 자료가 돌아다닌는데, 이것으로 해석을 해보면, 전통주 연구소의 도량표가 1909년 도량형법 기준을 기본으로 하되, 곡식 원료에 한정하여 "서울/경기/강원"을 따르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 봤다. 즉, 물은 1되에 1.8l 일것이고 쌀은 부피를 고려하여 1.6kg, 그런데 서울/경기/강원은 그 절반이다.

 

여하간 전통주 연구소의 도량 기준을 따라서, 고문헌 주방문 술을 빚으려고 하면 큰 차이가 있다.

 

시의전서 주방문에서 "성탄행(석탄주)"의 사례로 따져본다. 참고로 "승"은 "되"와 같고, "두"는 "말"과 같다.

https://koreantk.com/ktkp2014/kfood/kfood-view.view?foodCd=107495

 

성탄행 [한국전통지식포탈-전통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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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전서 (1800년대 후반)
원문 백미 이 백셰 말여 물 한노 쥭 쓔어 차거든 가로누룩 한 셕거너허 동졀은 칠일 하졀은 삼일 츈츄은 오일만에 졈미 일  백셰하여 무르게 쪄 익거든 밋슐 셕거 칠일 안에 쓰나니라 달고 가장 죠으니 입의 먹음어 삼키기 앗가오니라
번역 멥쌀 2되를 깨끗하게 씻어 곱게 가루로 내고 물 1말로 죽을 쑤어 식으면 가루누룩 1되를 섞어 넣는다. 겨울철에는 7일, 여름철에는 3일, 봄·가을에는 5일 만에 찹쌀 1말을 깨끗하게 씻어 푹 쪄서 식으면 밑술을 섞어 7일 만에 쓴다. 달고 가장 좋으니 입에 머금어 삼키기 아까울 정도이다.

1) 백미 2되를 깨끗하게 씻어 곱게 가루로 내고 물 1말로 죽을 쑤어 식으면 가루누룩 1되를 섞어 넣는다.
2) 겨울철에는 7일, 여름철에는 3일, 봄·가을에는 5일 안에 찹쌀 1말을 깨끗하게 씻어 푹 쪄서 식으면 밑술을 섞어 7일 후 먹는다.

단계 발효 맵쌀 찹쌀 가공 누룩 누룩형태
밑술     2 승(되)   1 말 1 되 가루
덧술       1 두(말)        

 

< 조선시대 도량 >

  • 맵쌀 2되(升) 무게 : 530g x 2升 = 1,06kg
  • 물 1말 : 5.7l
  • 가루 누룩 1되 : 400g
  • 찹쌀 1말 : 5.4kg
  • 밑술 비율 (쌀:물) = 1 : 5.38
  • 전체 비율 (쌀:물:누룩) = 1 : 0.88 : 0.062

< 전통주 연구소 도량 >

  • 맵쌀 2되(升) 무게 : 800g x 2升 = 1,6kg
  • 물 1말 : 18l
  • 가루 누룩 1되 : 600g
  • 찹쌀 1말 : 8kg
  • 밑술 비율 (쌀:물) = 1 : 11.25
  • 전체 비율 (쌀:물:누룩) = 1 : 1.875 : 0.0625

위 결과의 차이가 너무 커서, 실제 수업에서 사용하는 석탄향 주방문으로 비율도 재봤다.

전통주 연구소, 연구반 석탄향 주방문
밑술 멥쌀 2되, 누룩 1되, 물 2병(6되)
덧술 찹쌀 1말

 

< 전통주 연구소, 연구반 석탄향 도량>

  • 맵쌀 2되(升) 무게 : 800g x 2升 = 1,6kg
  • 물 6되 : 10.8l
  • 가루 누룩 1되 : 600g
  • 찹쌀 1말 : 8kg
  • 밑술 비율 (쌀:물) = 1 : 6.75
  • 전체 비율 (쌀:물:누룩) = 1 : 1.125 : 0.0625

결국 "맨"님이 문의하셨던 것처럼, 전통주 연구소의 도량형이 물 1되와 쌀 1되의 다른 부피 기준이 무엇인지를 아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우선 이것은 후에 기회가 되면 문의 드려보는 것으로 해야겠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만들어보는 석탄주의 비율은 알게모르게 조선시대 도량에 근사치로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고, 나 역시 유사한 비율로 여러번 만들어 봤다. 그렇기에 다음에 석탄주를 만들면 연구반 석탄향 도량으로 한번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사실 무엇이라도 향과 맛이 더 좋다면 바랄 나위가 없다.